가치와 실체란 무엇인가(feat. 비트코인)
2020년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대잔치였다. 코로나로 인해 금리는 사상 최저치까지 내려갔고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지갑에 현금을 다이렉트로 꽂아주니 넘처나는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갔다. 부동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집값이 폭등하였고 다음은 주식시장으로 한 해에 코스피가 무려 저점대비 126%나 상승해 사상 최고점인 3260을 찍고 삼성전자가 9만원을 넘는 기엄을 보여줬다. 그뿐이 아니다. 주식도 오를만큼 오르니 사람들은 암호화폐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시가총액이 테슬라와 페이스북을 넘긴 1조달러를 기록하는 기엄을 보여줬고(21.3.2 현재 9100억 달러) 지구에서 가장 큰 검색포탈인 구글과 은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물론 풀려난 유동성이 비트코인의 가격상승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오로지 그것이 상승의 전부라고는 볼 수 없다. 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전세계 사람들이 구글창에 ‘비트코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본 횟수를 분석해 그래프화 해놓은 구글트렌드 자료다. 2017–18년도 1차 폭등시기를 100으로 놓고 봤을 때 가격은 그 당시보다 거의 3배가까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65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걸 올린 것인가? 바로 전세계 금융기관 및 큰손이라 불리우는 대부들의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기관 돈이 들어와 가격이 폭등했고 가격방어가 되겠구나”가 아니라 드디어 금융권에서 비트코인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트코인은 ‘자산’이라는 수식어가 아닌 ‘스캠’, ‘사기’라는 수식어가 더 많이 붙어왔다. 아무래도 18년도 초 2만달러였던게 단 몇일만에 3천달러로 회기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지구상에서 가장 돈냄새를 잘 맡는 조직이 이것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디지털 자산’ 이라고 인식하면서 본격적인 매입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얘기하면 10에 8은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대표적으로 나에게 되묻는 말 중에 하나가 “그게 무슨 가치를 갖고 있는데?”와 “화폐라고 하면서 실체가 뭐야”이다. 특히 이는 부모님 세대와 이야기 할때마다 하도 맞닥뜨려 이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래서 오늘은 1. 실체란 무엇이며 2.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실체란 무엇인가
시작하기에 앞서 실체의 사전적 정의를 먼저 보고 가자.
화폐의 관점에서 보자면 첫 번째 정의를 적용해 볼 수 있겠다. 우리는 ‘돈’이라하면 만원짜리 지폐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만원짜리 화폐가 갖고 있는 실제의 물체가 무엇인가.
화폐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실물화폐와 명목화페다. 실물화폐는 아주 옛날 화폐경제 초기에 사용하던 돈이다. 주로 재화(물건)로서의 사용가치에 초점을 맞춰 거래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실물화폐는 쌀이었다. 쌀과 고기를 교환하고, 가축을 교환했고 모두가 이 거래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즉, 재화의 사용가치에 대한 합의가 서로 이루어져야 화폐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쌀이라는 실물화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했다. 일단 너무 무겁고 보존이 어려웠다. 거기에 매년 수확물에 따라 품질 차이가 심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실물화폐는 쌀에서 귀금속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를 금속화폐라 칭한다. 귀금속 중에서도 오늘날까지 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과 은이 화폐의 역할을 아주 오랜 기간동안 유통됐다. 금속화폐는 화폐가 함유한 귀금속의 가치와 화폐의 가치가 동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안에 동일한 가치만큼의 귀금속이 포함되지 않기 시작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한다.
이젠 금속을 만드는 것 조차 귀찮아졌다. 지폐의 탄생이다. 만 원짜리 지폐를 찍을 때 필요한 건 종이와 잉크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으로 종이쪼가리에 ‘만 원’이라는 가치를 부여했을 뿐이다. 우린 이것을 명목화폐라 부른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명목화폐의 실체는 무엇일까? 종이 쪼가리일까 아니면 정부가 정한 법일까? 종이로 보기에도 애매하고 법을 실체로 보기도 애매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오히려 실체에 가까운 것은 종이다. 즉, 명목화폐에 실체라는 잣대를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명목화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폐 자체가 가진 가치는 거의 없고 명목상 부여한 가치만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화폐의 실체를 따질 때에는 우리가 부여한 가치에 실체의 유무를 따져보는 것이 맞다. 이 경우 실체는 하나의 약속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화폐의 가치를 따지기 위해서는 실체의 정의부터 다시 세우고 가야한다.
그렇다면 법정화폐의 실체는 법정화폐에 가치를 보증하는 존재의 유무로 정의할 수 있다. 즉, 가치를 보장해주는 존재는 국가다. 만 원짜리 지폐의 실체는 그 가치를 보증해주는 대한민국 정부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만 원짜리 지폐의 가치를 온전히 보증해주려면 담보가 있어야 한다. 만 원짜리는 무엇을 담보로 찍혀져 돌다다니는 것일까? 놀랍게도 없다. 만 원이라고 찍혀있는 종이 쪼가리는 대한민국 법에 의해 그 어떠한 담보도 없이 만 원의 가치를 갖고 있는 재화와 교환될 수 있게 된다.
실체가 있다고 생각되어 왔던 대한민국의 법정화폐인 원화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금이라는 담보를 바탕으로 법정화폐를 발행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달러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지시킨 닉슨쇼크 전까지는 말이다. 그전까지 달러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에 비례해서 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경제력이 약화되었고, 달러 가치에 불안을 느낀 세계 각국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태환하기 시작했다. 금태환 요구가 늘어나자 미국의 금 보유량이 바닥을 보였고 닉슨 대통령은 배째라는 마인드로 일관하면서 금본위제가 폐지되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법정화폐의 담보가 사라졌다.
금이라는 담보가 없어지자 달러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한정 발행되기 시작한다. 달러를 발행하면 할수록 통화의 가치가 떨어져 제품을 싼값에 수출할 수 있게되어 무역수지가 손쉽게 개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더 많은 달러를 찍어 부실기업을 구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만병통치약의 맛을 느껴버린 미국은 경제에 이상이 생길때마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달러를 더 찍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양적완화다.
우리는 대부분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다. 눈에 보인다고 실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체에 집착한다.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고 실체가 있다고 생각되어 왔던 법정화폐도 실체가 없다. 앞으로 전세계는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의 돈을 끊임없이 찍어내 끝을 알 수 없는 인플레이션의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즉, 실체도 없는 법정화폐가 지배하는 시스템에서 현금만 들고 있는 사람은 벼락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끊임없이 찍어져 나오는 지폐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될것이며 화폐의 구매력이 하루가 다르게 하락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의 대가로 얻게 된 법정화폐를 끊임없이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 즉 투자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금, 부동산, 주식과 같은 전통자산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제 전통자산 뿐만 아니라 암호화폐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오로지 본인을 위해서.
2.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앞서 법정화폐에도 그렇게 중요시하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봤다. 그렇다면 이제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암호화폐에 관심이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암호화폐가 무슨 가치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 의심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과연 무엇인가? 가치란 인간의 욕구나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 충족시키는 성질, 충족시킨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성질을 뜻한다. 쉽게 말해 나에게 이로움을 주는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을까? 교환매채로서의 가치가 있을 수 있겠고, 또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을 갖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한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신뢰와 합의다. 나 말고 다른사람들이 내 것을 교환수단으로서 받아줘야 가치가 있는 것이며, 다른사람이 자산으로 인정해줘야 비로소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원화는 나라의 법이, 부동산은 실체와 등기부등본(법)이, 금은 희귀성이라는 성질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합의와 인정이다.
그럼 비트코인은 가치를 어떻게 증명받는가? 블록체인, 작업증명, 채굴과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의 참여도 그 자체다. 비트코인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비트코인의 가치는 높아지며 제도와 규제가 생겨나면 단기적으로는 악재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땐 비트코인 자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하나의 디지털 자산으로서의 성격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비트코인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자산도 가치의 핵심은 사용자다. 달러도 종이 쪼가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력한 화폐로서 작용하는 이유는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힘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금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한낱 돌덩이에 불과하다. 맨 처음 살펴본 바와 같이 비트코인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대규모 자본가들이 비트코인 생태계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가치는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비트코인 역시 그 과정에 있고 우리는 이를 묵인한다면 좋은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